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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민족, 슬기로운 언택트 여행을 즐기다

2020.07.23 4min 13sec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상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일상의 단비가 되어주던 여행도 마찬가지. 하늘길은 사실상 막혔고 국내 주요 여행지도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다 열길 반복하고 있다. 그렇다고 여행의 갈증을 마냥 버틸 수만은 없는 법. 방역수칙을 지키며 서로 간 접촉을 최대한으로 줄이는 언택트(Untact) 여행을 소개한다.


여행공화국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대한민국. 2019년 문체부가 발표한 내국인 출국자 수는 2871만 명에 달한다. 중복 출국자를 포함한 수치지만, 작년 한 해 동안 국민의 절반 이상이 해외로 떠났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여행이 사라졌다. 감염병으로 집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지만, 적절한 휴식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도 여행의 민족은 슬기롭게 대안을 찾았다. 방역수칙을 지키며 서로간의 접촉을 최대한으로 줄이는 언택트(Untact) 여행이 바로 그 답. 한국관광공사에서도 지난 7월, ‘특별여행주간’을 선포하며 언택트 여행지 100선을 발표했다.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비대면 여행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무궁무진한 국내 언택트 여행지를 직접 가봤다.



나 홀로 떠나는 해안 드라이브

삼척 새천년 해안도로비대면이 트렌드인 시대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비대면 여행 중 가장 모법적인 답안은 운전이다. 차 안에서 무슨 여행 기분을 내겠냐 싶겠지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얘기가 다르다. 운전에 집중하기 힘들만큼 눈부신 해안도로가 바다를 따라 내내 펼쳐지기 때문이다. 하나의 여행 콘셉트가 된 해안 드라이브 명코스를 선별했다.
강원도 삼척에 위치한 ‘새천년 해안도로’는 풍광으로 따진다면 최상위권이다. 동해 바다의 하이라이트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이 도로는 삼척해변과 삼척항을 잇는 5㎞ 남짓의 짧은 도로로 20분 이내의 가벼운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좋다. 푸르고 맑은 바다, 별처럼 반짝이는 윤슬, 그리고 파란 하늘이 완벽한 장관을 만들어낸다. 뿐만 아니라 바닷바람이 다듬어낸 해안 절벽과 그 벽에 부딪쳐 솟구치는 파도 또한 볼거리다. 듬성듬성 등장하는 해송이 자칫 심심할 수 있는 풍경의 빈틈을 메운다. 새천년 해안도로 일대는 일출로도 유명하다. 삼척에서 1박을 계획한다면 새벽 일찍 부지런을 떨어보자. 운전석을 뒤로 젖힌 채 붉게 변하는 바다를 바라보면 설사 조수석에 아무도 없다 해도 궁극의 낭만을 맛볼 수 있다.
경북 울진의 ‘울진 해안도로’도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관동팔경 중 하나인 망양정에서 시작해 덕신해변 부근까지 시원하게 뚫려 있는 17㎞ 구간이다. 아찔할 만큼 아름다운 바다 풍경은 기본, 달리는 내내 독특한 기암괴석이 동행한다. 심지 역할을 하는 소나무가 있는 촛대바위와 거북이를 빼닮은 절묘한 바위까지 도로를 달리며 찾는 재미도 느껴보자. 특히 울진 해안도로 시작점인 망양정은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을 직접 하사했을 정도로 그 위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뛰어나다. 망양정 주변으론 꽃과 나무로 가득 찬 해맞이 공원과 해맞이 행사의 타종식을 위해 세워진 웅장한 울진대종이 있어 산책 코스로도 제격이다. 조금만 북쪽으로 올라가면 죽변항이 있는데, 아침 일찍 방문하면 해산물 경매의 생생한 현장과 울진의 대표음식 대게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남해안의 ‘땅끝 해안도로’는 전남 해남에 위치한 송호리 땅끝마을에서 시작해 사구미해변에서 끝이 난다. 흑일도와 백일도 등 멀리 남해 바다의 섬을 눈에 담은 채 운전을 이어갈 수 있다. 또한 한반도의 땅끝을 찍었다는 성취감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자연휴양림에서 힐링을

무등산 편백자연휴양림 요즘처럼 외출이 자유롭지 못한 시기일수록 사람은 대자연을 갈구한다. 회색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에 안겨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러라고 만들어진 곳이 휴양림이다. 머리 위로 쭉쭉 뻗은 키다리 나무 사이를 거닐며 사색에 잠겨 보자. 몸과 마음이 사이좋게 건강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전남 화순의 ‘무등산 편백자연휴양림’은 무등산 자락 어마어마한 규모의 편백나무 군락에 위치해 있다. 20만 평 규모의 편백나무와 삼나무, 소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보는 순간 감탄이 절로 터진다. 개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웬만한 국립 휴양림보다 깔끔하게 잘 관리되고 있다. 사시사철 피톤치드가 진동하는 이 숲길을 걸으며 삼림욕을 즐기면 스트레스로 시들거리던 오장육부가 다 싱싱해지는 느낌이다. 한여름에도 시원함을 자랑하니 땀범벅이 될 걱정 없다. 각각 ‘치유길’로 끝나는 세 개의 산책로가 있는데 어느 코스를 택하든 그 길이 정답이다. 어느 길을 걸어도, 어디를 바라봐도 수령이 40년이 넘는 편백나무가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기 때문. 숲 중턱에 나무로 만든 그네에 앉아 숲을 휘감는 바람의 노래와 새들의 지저귐까지 감상하면 금상첨화. 불과 차로 2~3분 거리에 무등산 양떼목장도 있다. 대관령만큼 이름난 곳은 아니지만 덜 인위적이고 더 거친 자연에서 풀을 뜯는 양들을 볼 수 있으니 잠시 들렀다 가기 좋다.
경기도 남양주에도 근사한 ‘축령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1995년 개장한 이곳은 남양주 최고봉인 축령산(879m)과 그 이웃인 서리산 사이에 위치한다. 삼림욕과 등산, 캠핑과 계곡 탐방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자연 종합 패키지 같은 휴양림이다. 숙박으로도 유명해 하루 1000명 이상 수용이 가능하나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해 현재 숙박시설과 야영데크는 임시 휴관 중이다. 그러나 등산로는 개방됐으니 실망할 필요 없다. 산림청이 공표한 대한민국 100대 명산 중 하나인 축령산의 위엄은 휴양림 입구에서부터 드러난다. 부대시설이 모여 있는 초입을 통과하면 각양각색의 나무가 머리 위를 온통 뒤덮는다. 해가 중천에 뜬 낮12시에도 등산로가 다소 어두울 정도. 약 2시간 반이면 닿는 정상까지 구간마다 다른 종류의 나무 군락이 이어져 놀라움을 자아낸다. 소나무에서 단풍나무로, 잣나무에서 물푸레나무로 변화무쌍하게 이어지는 푸름의 향연은 축령산이 가진 많은 장점 중 하나다. 서리산 방향으로는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700m 길이의 철쭉 동산이 있어 5월 즈음 방문하면 연분홍의 파도를 만날 수 있다. 산 정상 부근엔 돌길이 많아 제법 수고스럽지만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절벽과 계곡이 지친 다리에 힘을 넣어준다. 남양주 최고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시내 전망은 구구절절 설명해 봐야 입만 아프다.



숨겨진 이색마을을 여행하기

가천 다랭이마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작은 마을을 찾는 것도 코로나19 시대의 이색 여행법이다. 각 시·군마다 특색 있는 마을 하나씩은 있기 마련. 이제는 하나의 테마로 자리잡은 벽화마을부터 지역의 오랜 역사가 담긴 전통 마을까지 그 범위가 점차 늘고 있다.
강원도 동해시의 상징인 묵호항엔 어민들의 애환이 담긴 '묵호등대마을'이 있다. 삼척과 태백에서 생산된 석탄을 운반하는 항구로 번영을 누비던 묵호항은, 관련 산업이 몰락함과 동시에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함께 잊혔던 묵호등대마을에 100여 개의 벽화를 필두로 ‘논골담길’이 조성돼 다시 활력이 넘치기 시작했다. 담벼락마다 형형색색의 물감으로 그려진 화려한 그림은 모두 동네 주민들의 삶을 주제로 삼고 있다. 한때는 언덕 꼭대기에 오징어와 명태 덕장이 있어 두 해산물이 벽화의 단골 메뉴라고. 눈에 띄는 또 다른 소재는 장화다. 지금은 잘 포장된 길이지만 명태를 말리던 시절만 하더라도 덕장으로 오르던 길이 온통 진흙길이었다.
그래서인지 ‘신랑 없이 살아도 장화 없이 못 살고’라는 문구가 담긴 벽화도 보인다. 가파른 언덕 마을이라 묵호등대로 가는 길이 꽤 힘겹지만 끊길 듯 끊이지 않는 정겨운 벽화 덕에 발걸음에 힘이 실린다. 언덕 중턱엔 동해 바다를 파노라마로 즐길 수 있는 바람의 언덕이 있어 좋은 쉼터가 되어 준다. 정상에 오르면 시원한 바람과 22m 높이의 하얀 묵호등대가 여행자를 반긴다. 앞으로는 파란 바다가, 뒤로는 초록의 산이 펼쳐져 오르막길의 수고를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
섬이나 다름없는 경남 남해군에도 숨은 보석이 하나 있다. '가천 다랭이마을'이 바로 그곳. 제법 알려져 있으나 너무 외져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편이다. 매력이 넘치는 이 마을은 물리적으론 남해 바다를 마주한 어촌 같지만 놀랍게도 농촌마을이다. 바다가 지척에 있음에도 배는커녕 선착장조차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바닷가 산비탈을 따라 계단식 논이 끝없이 이어질 뿐. 이유는 간단하다. 마을과 바다가 맞닿는 부분이 해안절벽으로 이뤄진 탓에 배를 정박할 수 없어 어업이 불가능했던 것. 마을 주민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지혜를 짜냈고 45도 경사의 산비탈을 개간해 논밭으로 일궜다. 단 한 뼘이라도 더 자리를 내기 위해 돌을 쌓아 옹벽을 만든 다랭이는 남해 지역의 방언으로 ‘산골짜기의 비탈진 곳에 있는 계단식으로 된 좁고 긴 논배미’를 뜻한다. 그렇게 쌓아 올린 계단식 논이 100층을 넘는다. 기본적으로 바다와 논, 산이 한곳에 어우러져 있어 신기한 이 마을을 즐기는 최고의 방법은 계단식 논 사이를 거닐며 바다와 눈을 맞추는 일이다. 계단식 논의 그 작은 틈으로 앙증맞은 산책로가 이어지고 해안 절벽 조망이 완벽한 곳엔 신선놀음을 위한 전망대 정자가 멋스럽게 들어서 있다. 마을 산비탈을 따라 북쪽으로 발걸음을 이어가면 남해 최고의 걷기길 코스인 남해바래길(2코스 앵강다숲길)이 펼쳐지니 하이킹 마니아의 도전을 강력히 권한다.
부석사로 유명한 경북 영주에도 재밌는 마을이 하나 숨어 있다. 도시 남쪽을 가로지르는 내성천 곁에 위치한 '무섬마을'이다. 이곳엔 고택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선비의 고장인 영주답게 조선시대부터 선비와 사대부들이 모여 살던 전통 마을이다. 지금까지 40동이 넘는 한옥과 초가집이 남아 있어 동네 골목을 따라 걷기만 해도 고즈넉함이 느껴진다. 이 마을의 주인공은 내성천 위에 놓인 외나무다리. 폭이 불과 30㎝밖에 안되는 S자 모양의 긴 다리는 30년 전까지 마을에서 외부로 이어지는 유일한 다리였다고.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다리 위를 걸어보면 작은 마을이 전해주는 소소한 행복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우리가 언택트 여행을 할 수 있는 건 모두 방역 제1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 덕분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들이 없었다면 여행이란 단어조차 꺼내기 힘들었을 것. 그러니 부디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안전한 여행하기를 당부한다.


글·사진=태원준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