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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vs 2021, 현대건설이 걸어온 74년의 시간을 되짚다

2021.05.24 4min 13sec

1947년 5월 25일, 서울시 중구 초동 현대자동차공업사 건물에 ‘현대토건사’라 쓰인 간판 하나가 붙었습니다. 1950년 현대자동차공업사와 합병 후 ‘현대건설주식회사’로 출범한 현대건설은 전쟁으로 초토화된 땅 위에 도로를 내고 다리를 놓으며 국가 재건에 앞장섰습니다. 전문 인력이나 제대로 된 장비도 없던 시절, 현장에서 부딪히고 밤새워 연구하며 현대건설의 내실도 단단해졌습니다.
전쟁의 상흔이 아물고 경제 기반 마련 사업이 활발해지자 현대건설이 도전할 수 있는 영역 또한 넓어졌습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으로 진출하며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갔죠. 도전 정신과 끈기로 버티며 맡은 바 공사를 완수해낸 시간이 현대건설에 더 큰 기회로 돌아온 것입니다.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돌파구를 찾아 때로는 역동적으로, 때로는 묵묵히 건설에 매진한 74년의 역사가 현대건설의 오늘을 만든 셈입니다. 2021년, 건설업계를 선도하며 글로벌 톱티어를 향해 질주하는 현재. 현대건설은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 역작을 남기며 인류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현대건설이 걸어온 지난 74년의 시간을 되짚어 봤습니다.


무교동사옥 vs 계동사옥


무교동 사옥vs계동 사옥


1961년 1월, 무교동 92번지. 현대건설은 창사 14년 만에 첫 단독 사옥을 마련하며 이른바 ‘무교동 시대’를 열었습니다. 현대자동차공업사 건물에서 시작해 광화문 평화신문사 빌딩, 소공동 삼화빌딩으로 이어진 셋방살이를 청산하고 독자적으로 마련한 첫 사옥이었죠. 무교동사옥은 당시 서울에서 손꼽힐 정도의 현대적 고층건물로 현대건설의 성장을 상징했습니다. 최초 10여 명 남짓한 인원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조직이 원활히 움직일 수 있는 토대가 됐다는 데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이후로도 현대건설은 1976년 세종로사옥, 1983년 계동사옥으로 터를 새로이 마련하며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사업과 조직의 규모를 소화해냈습니다. 이는 국내외 건설시장에 활발히 진출하며 사업적 기틀을 견고히 할 수 있는 기반이 됐습니다. 2014년 신(新)계동사옥 시대를 맞은 이후 사무실은 밝고 쾌적한 분위기로 탈바꿈했다. 미팅, 휴식 등 용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공간들은 직원들의 편안하고 효율적인 회사 생활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고령교 vs 쿠웨이트 쉐이크 자베르 코즈웨이


고령교 vs 쿠웨이트 쉐이크 자베르 코즈웨이


작년 5월, 쿠웨이트 망망대해 위에 무려 36.1㎞의 새로운 길이 놓였습니다. 현대건설의 독보적 기술력으로 세계 지도에 새로운 획을 그은 ‘쿠웨이트 쉐이크 자베르 코즈웨이’ 해상 교량입니다. 현대건설 교량 공사의 역사는 6·25전쟁의 포화 속에서 시작됐습니다. 변변한 기술력도, 장비도 없이 무너진 소규모 교량 복구 경험이 전부였던 시절. 1953년 ‘고령교 복구공사’에 도전했으나 회사가 존폐 위기에 처할 만큼 막대한 손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전 공정을 맨손으로 진행하다시피 하며 축적한 신용과 노하우는 더 큰 자산으로 남았습니다. 장비를 개발하고 현장에 부딪히며 발전한 현대건설의 기술력은 1958년 ‘한강인도교(한강대교) 복구’를 시작으로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에 13개의 다리를 놓았습니다. 우리가 만든 교량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횟수가 늘수록 기술도 끊임없이 발전했습니다. 국내에는 국내 최초 현수교 ‘남해대교’ 국내 최초 사장교 ‘진도대교’ 현수교 건설 기술의 절정인 ‘울산대교’ 등이, 해외에는 북미에서 가장 높은 산의 협곡을 가로지르는 ‘허리케인 교량’을 시작으로 당대 최장 교량인 말레이시아의 ‘페낭대교’ 세계 최초 사장교·현수교 복합 교량인 ‘터키 보스포러스 제3대교’ 등이 새로운 길을 잇고 있습니다.


마포아파트 vs 힐스테이트&디에이치


마포아파트 vs 힐스테이트&디에이치


채소밭과 과수원 근처, 경부고속도로 공사에 쓰는 장비를 보관하던 압구정 모래밭에 상상 못 할 변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1975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그 일대가 고급 주거단지로 거듭난 것입니다. 현대건설은 1964년 국내 최초 단지형 아파트 마포아파트를 시작으로 힐탑외인아파트, 여의도 시범아파트에 이어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등을 건설하며 주거문화를 선도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아파트 시대가 열린 이래로 ‘현대’는 오랫동안 아파트의 대명사였습니다. 급격한 산업화로 인구가 도심으로 몰리던 때 대단지 아파트를 공급하며 심각한 주택난 해결에 일조한 현대건설은 현대홈타운, 현대하이페리온 브랜드를 통해 시대 변화에 따른 주거 개념을 반영해 왔습니다. 이어 아파트 건설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토대로 2006년 힐스테이트, 2015년 디에이치 브랜드를 론칭하며 주거환경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아파트는 단순히 ‘사는 곳’을 넘어 ‘삶의 가치를 높이는 곳’으로서의 의미가 큽니다. 현대건설은 과거 선배들이 축적한 노하우에 최첨단 주거기술을 접목해 대한민국 주거문화의 기준을 높이고 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vs 카타르 루사일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vs 카타르 루사일고속도로


6·25전쟁이 한창이던 때 미군이 발주한 군사도로 공사를 수행하며 도로공사를 시작한 현대건설은 전쟁 이후 국도 포장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다양한 실적을 올렸습니다. 특히 미군 비행장 활주로 등 기술력을 요하는 공사를 통해 다진 경쟁력으로 마침내 1965년, 태국의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따냈습니다. 처음으로 해외 건설시장에서 부딪히며 습득한 경험과 기술은 고스란히 ‘경부고속도로’ 공사에 적용됐습니다. 대한민국의 대동맥을 이은 이 도로를 시작으로 우리 회사는 세계 여러 나라의 크고 작은 혈관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도로는 이제 단순한 길을 넘어 ITS(Intelligent Transport System·지능형교통제어시스템) 등 스마트 기술을 입었습니다. ‘창원~부산 민자도로’의 터널 내 2차 사고 방지 서비스, ‘제2영동고속도로’의 노면상태 예측시스템 등은 운전자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교통 환경을 제공하고 있죠. 현대건설은 이러한 ITS 기술을 카타르 ‘루사일고속도로’ 등 해외 고속도로에도 적용하며 전 세계에 미래를 향한 길을 내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내무성 본청 vs 카타르 국립박물관


사우디아라비아 내무성 본청 vs 카타르 국립박물관 


태국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를 시작으로 해외 건설시장에 진출한 현대건설은 전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역작을 다수 남겼습니다. 그중에서도 피라미드를 뒤집은 듯한 본체 위에 이슬람 사원 모양의 돔을 얹은 형태의 사우디아라비아 ‘내무성 본청’은 1992년 준공 이후 지금까지도 손꼽히는 건축물입니다. 해외 건설시장에 처음 진출했던 당시 시방서도 제대로 볼 줄 몰랐던 현대건설이 치밀한 구조역학적 계산과 고난도의 시공기술을 필요로 하는 건축물을 성공적으로 준공한 것입니다.
이후 싱가포르 ‘선텍시티’ 베트남 ‘비텍스코 파이낸스타워’ 등 건설 역사에 길이 남을 발자취를 남기던 현대건설은 2019년, 세계 최초로 건축 전 과정에 3D BIM(건축정보모델링) 기법을 도입한 ‘카타르 국립박물관’ 준공에 성공했습니다. 건설 전 분야에 걸쳐 축적한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과 풍부한 시공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에 랜드마크를 세우며 건설 한류를 이끌고 있습니다.


인천화력발전소 vs 우루과이 푼다 델 티그레 복합화력발전소


인천화력발전소 vs 우루과이 푼다 델 티그레 복합화력발전소


1953년 휴전 후 우리나라는 전력망 확충에 가장 집중했습니다. 전기가 있어도 돌릴 공장이 없고, 도시에서 벗어난 외진 곳에서는 여전히 호롱불을 켜던 시절, 경제 개발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발전(發電) 플랜트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자체 기술로 발전소를 세울 수 있는 회사가 없어 외국 기술진의 주도하에 건설을 수행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기술력을 쌓은 현대건설은 1978년 ‘인천화력 1~4호기’를 완공하기에 이릅니다. 설계를 제외한 구매 조달과 시공, 시운전을 맡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이 프로젝트는 현대건설 발전소 건설 기술 독립의 지표가 됐습니다. 이후 설계까지 전 부문을 자체 역량으로 완공한 ‘평택화력 1·2호기’에 이어 이라크 ‘알무사이브 발전소’, ‘분당복합화력발전소’ 등을 건설하며 지속적으로 기술력을 향상시켰습니다. 화력, 복합화력, 지열발전 등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발전소를 건설한 경험은 점점 더 넓은 세상에 빛을 전하고 있습니다. 2019년 11월에는 우루과이 ‘푼다 델 티그레 복합화력발전소’를 준공하며 남미에서의 사업영역 또한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때 그 시절 vs 그리고 현재


그때 그 시절 vs 그리고 현재


직원 10여 명 남짓한 영세기업에서 120여 명의 중견기업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현대건설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1950년대 말 총무부·경리부·공무부·자재부·기술부 5대 부서 체계를 갖춘 이후 사세 확장에 따라 조직을 정비했고, 1958년에는 건설업계 최초로 대졸 공채를 도입해 역량을 뒷받침했습니다. 출근해서 볼 수 있는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변화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복장과 사무실 풍경입니다. 거의 모든 남직원이 흰 셔츠에 넥타이 맨 양복 차림, 여직원은 90년대까지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컴퓨터 대신 서류 뭉치와 펜으로 일하던 때도 있었죠. 보고서를 수기로 작성하고 도면도 손으로 그리던 그 시절에는 글씨를 잘 쓰는 것 또한 능력이었다고 합니다. ‘변화’와 ‘혁신’이 핵심화두인 현재, 우리 회사는 자유로운 복장으로 일하며 유연한 기업 문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컴퓨터는커녕 전화기조차 흔치 않던 시절에도 사내 소통을 위한 매개가 있었습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당시 정인영 부사장의 주도로 창간된 사우지 <現代>입니다. 원고를 일일이 손으로 써서 등사하는 방식으로, 한 권을 만드는 데엄청난 품이 들었기에 간행 중단과 속간을 반복하며 발행됐습니다. 현재 사보신문 <HYUNDAI E&C TODAY>의 뿌리는 1979년 타블로이드 판형으로 창간된 <現代建設>입니다. <現代>에서부터 이어진 종이 사보는 사내 뉴스, 현장·직원 및 가족의 이야기, 건설업계 주요 동정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루며 오랜 시간 현대건설 임직원의 끈끈한 유대를 잇고 있다. 요즘은 현대건설 뉴스룸, 블로그, SNS,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도 현대건설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합니다. 특히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웹드라마 현대건‘썰’,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한 뮤직비디오를 비롯한 다양한 콘텐츠는 현대건설의 모습을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현대건설은 여러 플랫폼을 통해 더욱 알차고 친밀하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