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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칼럼] 과학이 바꾸는 인류의 삶 ‘역사성·우연성·불확실성’

2021.06.02 3min 42sec

과학의 중요성은 크게 두 가지로 이해됩니다. 하나는 인류 지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 하나는 기술 혁신을 통해 성장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철학적, 후자는 경제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 과학혁명은 전자의 문제의식이 계몽주의와 공명하며 발생했습니다. 이때의 과학은 이성 중심의 새로운 시민사회 건설을 위한 거대한 철학적 기획의 일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 현대인은 후자의 관점에서 과학을 바라봅니다. 실제로 많은 선진국이 과학적 발견을 토대로 산업과 기술을 혁신해 부를 축적했습니다.


과학자의 모습을 그린 일러스트


과학의 효과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과학은 본디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행위입니다. 경제 발전이나 물질적 풍요 등 현실의 목적성을 담지 않죠. '인류 지식의 지평 확장'이 과학의 본령에 해당하고, '기술 혁신을 통해 성장에 기여하는 것'은 부수효과 또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과학과 인류의 현실이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과학은 때로 삶의 질을 크게 높이고 문명의 일대 진보를 이루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단기간에 확인되지 않으며, 예측도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과학의 효과는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인지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지식은 조금씩 인류의 삶에 스며들어 어느 순간 문명의 수준을 크게 높입니다. 과학적 발견과 그 활용도 정밀한 인과 관계를 따르진 않습니다. 오히려 우연과 불확실성이 많이 개입됩니다. 연구 계획을 세워도 엉뚱한 방향으로 튀는 경우가 많으며 거기서 대단한 발견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뭔가 발견하더라도 당시에는 그걸 어디에 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 발견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만들어지고, 응용에 대한 여러 힌트와 시도가 겹쳐지면서 기술과 제품으로 확립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과학은 역사성, 우연성, 불확실성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인류의 삶을 변화시키고 문명의 수준을 높입니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노벨 과학상도 인류의 진보를 이끈 과학자들이 주로 받습니다. 역대 노벨 과학상의 이력을 들여다보면 현대 인류 문명의 흥미로운 변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봅시다.


미지의 광선이 수많은 생명을 구하다 ‘X선’

1895년 빌헬름 뢴트겐은 음극선관의 자외선 방출 실험 중 정체불명의 광선을 발견했습니다. 음극선관에서 방출된 광선이 물체들을 관통해 몇m 떨어져 있던 바륨과 반응해 갑자기 빛을 냈던 것입니다. 이 현상을 더 알아보려고 책을 가림막으로 썼다가, 책 안의 열쇠와 책을 든 자기 손의 뼈가 투과돼 비치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합니다. 뭔가 발견은 했지만 그 정체를 알 수 없었기에 미지수를 뜻하는 ‘X’라고 명명했죠.

몇 년 뒤부터 X선은 의료기술로 활용되어 수많은 생명을 구하게 됩니다. 또한 X선으로 원자 내부를 관찰하게 되면서 원자 구조 규명과 양성자, 중성자, 전자 등의 발견이 이뤄집니다. X선으로 인해 핵물리학이 태동한 것입니다. X선 발견이 없었다면 닐스 보어의 원자 모형은 물론 현대 의학의 중요한 성취인 DNA, 헤모글로빈, 인슐린에 대한 구조적 이해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공로로 뢴트겐은 1회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고, 이후에도 X선을 활용한 연구로 20여 명의 수상자가 더 배출됐습니다.


공기 중의 질소로 빵을 만들다 ‘하버법’

인류를 구한 ‘과학자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 프리츠 하버는 거의 첫손에 꼽힐 것입니다. 그의 최대 공로는 공기 중의 질소를 메탄에서 추출한 수소가스와 화학적으로 반응시켜 암모니아로 합성해낸 것입니다. 이때 필요한 촉매제로 '철'이 완벽하다는 것을 알아낸 덕에 질소비료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이 하버법은 식량 생산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 인류를 기아의 위험에서 구해냈습니다. 당시는 토머스 맬서스의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명제가 정설로 인정받던 시대로, 20세기 초 유럽에서도 식량 부족과 기아 위험이 상시적 걱정거리였죠.

그러나 하버법으로 개발된 질소비료가 출시되자, 3년 만에 식량 생산량이 인구 증가량의 2배를 기록했습니다. 덕분에 20세기 초 약 16억 명이던 세계 인구가 100년도 안 돼 70억 명까지 급증했습니다. 하버법이 없었다면 최소 수십억 명이 아예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1918년 노벨위원회는 “교수님의 조국과 인류 전체를 위한 값진 승리를 축하드린다”고 경의를 표하며 하버에게 노벨 화학상을 시상했습니다. 다만 하버는 조국 독일의 제1차 세계대전 승리를 위해 독가스를 개발한 전범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나치의 홀로코스트에도 쓰였는데, 하버가 유대인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설적입니다. 역사적 인물은 공과를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지만 하버만큼 그것이 극명하게 갈리는 인물도 드뭅니다.


시작은 실수였으나 끝은 구원이 되다 ‘페니실린’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약으로 꼽히는 항생제는 순전히 실수로 개발됐습니다. 1928년 포도상구균을 연구하던 의사 알렉산더 플레밍은 샘플 배양 접시를 제대로 닫지 않고 휴가를 떠났습니다. 그 사이 샘플이 오염됐는데, 실험실로 돌아온 플레밍은 배양 접시에 있던 포도상구균을 웬 곰팡이들이 먹어치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플레밍은 이를 곧바로 폐기하지 않고 좀 더 살펴보았고 페니실리움이라 불린 이 곰팡이가 세균을 억제하는 성질이 있음을 알아냈습니다.

이러한 원리를 적용해 만든 것이 페니실린입니다. 이후 다양한 항생제들이 쏟아져 나왔고, 인류는 질병과의 싸움에서 완전한 우위를 점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잘 상상이 안 가지만, 100여 년 전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감염 질환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예컨대 약국에서 쉽게 구하는 연고만 있어도 치료 가능한 상처가 팔다리 절단이나 죽음으로 이어지던 게 이때의 일상이었습니다. 1950년대 50대 언저리였던 인류 평균 수명이 현재 80세 이상으로 늘어난 것에는 페니실린을 비롯한 항생제의 기여가 컸습니다.

페니실린의 원리를 밝힌 공로로 플레밍도 1945년 노벨 생리 · 의학상을 받았습니다. '실험 중에 특별히 나타나는 모습이나 생기는 일을 절대로 소홀히 다루지 말라.' 본인이 우연한 기회에 엄청난 업적을 남겨서인지 평소에도 플레밍은 후학들에게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비일상적 현상을 등한히 하지 말 것을 강조했습니다.


인류에 새로운 빛의 혁명을 선물하다 ‘청색 LED’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아카사키 이사무, 아마노 히로시, 나카무라 슈지의 청색 LED는 인류가 사용해 온 빛의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LED는 전기에너지를 빛 에너지로 바꿔주는 고효율의 친환경 소자입니다. 이는 적색, 녹색, 청색 순으로 개발됐으며, 청색이 마지막 난제였습니다. 그 이유는 파장이 짧을수록 빛을 만들어내는 화합물 반도체 개발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적색과 녹색 LED는 이 문제가 없어 60년대에 일찌감치 개발됐습니다.

그러나 파장이 짧은 파란색 빛은 수십 년간 불가능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청색 LED를 꼭 개발해야 했던 이유는 빛의 3원색인 적색, 녹색, 청색이 혼합돼야 백색광이 돼 조명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20세기 기술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봤지만, 1992년 아카사키 이사무와 아마노 히로시가 질화갈륨으로 청색 LED 제조에 성공하고 나카무라 슈지가 이의 대량 생산기술을 만들어냈습니다. 세기의 난제에 도전한 세 과학자의 집념은 무서울 정도입니다. 아카사키와 아마노는 70년대 초부터 20년 가까이 이론 검토와 실험을 반복했으며, 나카무라도 2년간 사적인 약속을 일절 잡지 않고 하루 100차례씩 실용화 실험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축적의 시간’이라는 표현에 어울리는 연구였던 셈이죠.

이로써 인류는 새로운 빛의 혁명을 목도하게 됐습니다. 화려한 빛의 향연을 연출하는 청색 LED. 청색 LED의 혜택을 가장 크게 본 사람들은 개도국 국민입니다. 청색 LED의 완성으로 높은 효율로 밝은 빛을 내는 백색 LED가 가능해져 개도국의 전등 보급률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게다가 청색 LED의 강한 살균 효과로 위생도 좋아졌습니다. 노벨위원회는 이렇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빛의 혜택을 선물해 준 점을 높이 샀던 것입니다.


자연을 이해하는 행위로서의 과학

과학은 자연에 대한 인식의 범위를 확대한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즉 무언가를 새롭게 알았다는 것만으로 목적을 다 이룬 것입니다. 그렇게 발견한 지식이 후일 혁신적 기술과 제품 개발로 이어지는 경우는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그것까지 예측하고 계획하면서 연구를 할 수는 없습니다. 과학자들은 그저 자연에 대한 호기심, ‘왜?’라는 질문에 답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예컨대 앞서 살펴본 X선, 하버법, 페니실린, 청색 LED의 발견 가능성과 활용 효과를 누가 예측할 수 있었을까요? 결과적으로 이것들은 역사의 진보를 이끌고 인류 삶의 수준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그러나 과학의 역사에는 인류의 삶에 영향을 미칠지, 어쩔지 아직 알 수 없는 연구가 훨씬 더 많습니다. 지금은 필요성에 의문이 드는 연구라도 20~30년 후 인류의 명운을 뒤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본래 과학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글=배대웅 기초과학연구원 커뮤니케이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