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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경제학자가 추천하는 인문학 서적

2021.12.08 3min 7sec

숲 속에서 독서하는 사람의 모습을 표현한 일러스트


경제학과 인문학은 사실 근본적으로 비슷한 문제의식 아래 세상을 바라보는 학문입니다. 경제학에서 다루는 많은 개념이 사실 인간 본성과 관련돼 있죠. 인문학의 대표 학문인 신화, 역사, 문학, 문화, 철학 등 역시 인류가 오랫동안 축척해온 사상과 행보에 대한 것들입니다. 따라서 그 속에는 인간 본성을 이해할 수 있는 많은 힌트가 숨어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이 인문학에 특히 관심을 갖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소통의 도시:  루이스 칸과  미국현대도시건축


소통의 도시: 루이스 칸과 미국현대도시건축 

서정일 | SPACETIME

로버트 울리치 텍사스A&M대 교수는 꽃이나 식물이 있는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의 창의력 차이를 실험했습니다. 그 결과 꽃이나 식물이 있는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 남성 직원은 아이디어 제안 건수가 15% 증가했고, 여성 직원 역시 더욱 유연한 해결책을 내놓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로체스터대의 앤드루 엘리엇 연구팀은 색깔이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 초록색에 자주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창의력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요. 실험 참가자들은 초록색을 긍정적이고 편안한 색으로 받아들였으며, 연구팀은 이것이 보다 창의적인 사고를 유발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인식하든, 못하든 주어진 공간에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간은 사람들이 특정 행위를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힘을 갖죠. 공간을 통해 유도되는 행동은 간헐적이고 일회성인 행동(action)이나 활동(activity)이 아닌 일정한 패턴을 띠고 지속적인 양상을 갖고 있는 행태(behavior)라는 점에서 그 영향력이 큽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소통의 도시』는 공간이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대표적인 도서입니다. 이 책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사람 루이스 칸의 작품 세계를 통해 공간이 인간의 삶의 행태에 미치는 파장을 생각해 보게 합니다. 특히 현대 건축사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화두로 삼아 해당 건축물이 도시와 도시민에 미치는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건축 공간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도 영향을 주고자 했던 20세기 최고 건축가의 고민을 엿보고 싶은 이에게 추천합니다.



예술의 사회경제사


예술의 사회경제사

이미혜 | 열린책들

예술 활동과 예술품은 일견 경제와는 무관해 보입니다. 하지만 경제의 뒷받침 없이 문화예술의 발달도 어렵다. 『예술의 사회경제사』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기술됐습니다. 교회의 스폰서십(Sponsorship)이 없었다면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은 탄생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근대 문화는 문학을 시발점으로 미술, 음악 순으로 발전했습니다. 특히 음악이 마지막으로 발전한 이유는 그 장르의 특수성에 있습니다. 미술과 문학에 비해 음악을 즐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당시 미술시장은 소규모 그림 위주로 형성돼 있었고, 문학시장 역시 책 한 권 정도 구매하는 것은 서민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음악은 일반 시민이 즐기기엔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 너무 컸는데요. 이처럼 예술은 독립적, 자율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예술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수요 덕분에 발달할 수 있었습니다. 또 예술 작품 역시 예술가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의 노동과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 탄생한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적인 명화, 조각품, 음악 등도 모두 소비재일 수 있음을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메이드


스위스 메이드

R. 제임스 브라이딩 | 에피파니

스위스라는 나라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스위스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는 듯합니다. 이 책은 어떠한 역사적 맥락에서 스위스가 ‘제조 강국’이 됐는지를 소개합니다. 

스위스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는 달리, 끊임없는 외침(外侵)에 시달려야 했던 굴곡진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스위스의 조상은 켈트족의 일족인 헬베티아인들인데요. 헬베티아인들이 지금의 스위스 땅에 자리 잡은 시기는 기원전 15세기께로, 독일 남부 지역에서 내려와 스위스 중부 고원지대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스위스 근간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헬베티아인들은 기원전 58년 로마제국에 흡수돼 서기 400여 년까지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455년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때는 헬베티아인 이외의 다양한 인종이 이 지역으로 들어왔는데, 알레마니족이 스위스 북부에, 로마화된 부르군트족이 서부, 랑고바르트족이 남부에 각각 정착하기에 이릅니다. 오늘날 스위스가 독일어, 불어, 이탈리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이후에도 스위스는 계속해서 외침에 시달립니다. 

스위스가 많은 나라로부터 점령의 대상이 된 이유는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반도에서 유럽 대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스위스를 거쳐야 하고, 반대로 독일에서 남부 지역으로의 교역 통로 역시 스위스를 지나가야 합니다. 따라서 스위스 장악은 당시 교역에 있어 커다란 힘을 갖게 됨을 의미했습니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침략만 받아 왔던 스위스가 세계 최고의 제약회사와 정밀공업 회사들이 즐비한 이유가 궁금하다면 본서를 추천합니다.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요시미 야 |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일본을 빼놓고 우리나라 경제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우리나라에 인접한 국가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 발전에 지대한 영향과 영감을 줬습니다. 

최근 들어 우리가 일본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조금 달라졌는데요. 과거에는 일본의 산업기술 육성 전략이나 주요 산업 생태계 조성 부분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주목했다면, 최근에는 저출산, 고령화, 지역 소멸, 양극화 등 일본 경제의 어두운 부분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경로를 뒤따라갈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일본 경제가 본격적으로 정체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어떠한 현상이 전개됐고, 일본에서는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펼쳤는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시행착오는 우리에게는 커다란 교훈과 시사점을 제공해 줍니다. 이 책이 대중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제사 분야의 도서임에도 국내에서 적지 않은 반응을 얻었던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일본을 통해 타산지석을 삼아야 한다는 인식이 높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메트로폴리스


메트로폴리스

벤 윌슨 | 매일경제신문사 

유엔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도시에 거주합니다. 그리고 향후 이러한 비율은 점점 높아질 것으로 예측합니다. 사람들은 북적되고 생활도 팍팍한 도시 생활을 왜 선호하는 것일까요? 이 서적은 우리 인류가 고대시대부터 도시를 형성해 모여 살게 된 배경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 주요 도시들이 어떠한 맥락으로 지금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이면과 함께 형성 배경을 하나하나 설명해 줍니다. 이는 우리가 사는 도시의 변천을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많은 사람이 도시로 이주해 빈민촌에서 열악한 생활을 함에도, 도시가 아닌 곳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나은 선택일 수 있음을 객관적인 통계와 함께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도농지역 거주자가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려드는 현상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이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 요소 중 하나는 우리나라 도시들에 대한 언급도 있다는 점입니다. 서울뿐 아니라 인천 송도 등이 형성될 때 어떤 지향점을 담았는지 등을 통해 외국인이 한국의 대표적인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은 어떠한지도 느낄 수 있습니다.


※ 본 칼럼은 본채널 운영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박정호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저자 / 사진 제공=각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