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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제갈량의 병서 <장원>에서 찾은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자질

2022.01.13 2min 54sec

쓰촨 청두의 무후사에 있는 제갈량 상.

[ 쓰촨 청두의 무후사에 있는 제갈량 상 ]


직장생활이 녹록하지 않은 이유는 업무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 선후배 등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경쟁력은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과 인간관계를 끌고 나가는 기술입니다. 조직 내 인간관계의 기술을 일러주는 고전으로는 제갈량의 병법서 <장원(將苑)>이 독보적입니다. 


리더십을 다룬 고전 <장원>
대략 병서(兵書)라 하면 <손자(孫子)> <오자(吳子)> <사마법(司馬法)> <위료자(尉繚子)>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 <육도(六韜)> <삼략(三略)> 등 조선시대 무장들의 과거 시험 과목이었던 ‘무학(武學) 7서’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병서를 제대로 공부하려면 여기에 <장원 (將苑)> <손빈병법(孫臏兵法)> <삼십육계(三十六計)>까지 10서 정도는 읽는 것이 기본입니다.
병서는 전쟁에서 적과 맞서는 음모기책과 기만술을 중심으로 기록된 입니다. 제갈량은 “전쟁이 아닌 평시에 거짓과 궤사를 일삼는 자들이 조직을 망친다”고 할 정도로 병법의 기술을 보통 때에 활용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제갈량의 병서 중 하나인 <장원>은 ‘적’이 아닌 자신의 군대를 단속하는 장군의 인간관계 기술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다른 병서와 차별화됩니다. 그 내용은 현대 리더십론에 무척 가깝습니다.
장수의 자질과 덕목을 논하는 <장원>은 다른 말로 ‘심서(心書)’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리더십은 리더의 ‘마음가짐’과 연결된다는 의미입니다. 책에는 제갈량의 마음가짐과 생각, 인간에 대한 통찰과 대응이 50편 약 5000자 분량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장수인지, 장수는 어떻게 살고 행동해야 하는지, 누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거나 망치는지, 특정 개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무슨 직책을 맡겨야 하는지 등을 알 수 있습니다.
관리직에 오르면 팀원의 특성을 파악해 그에 맞는 일을 맡겨야 능률이 오른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연차가 쌓일수록 사람을 보는 안목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런 점에서 <장원>은 관리자와 관리자가 되길 희망하는 사람들의 리더십 교재로 좋은 인사이트를 제공합니다.


조직의 흥망에 영향을 주는 유형들
<장원> 3편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사람의 품성을 변별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외견상 온화하고 선량하지만 알고 보면 매우 거짓되고 간사한 자가 있고, 겉으로는 용감하지만 실은 겁이 많은 자도 있으며, 늘 성심을 다하는 듯 행동하지만 실은 불성실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죠. 제갈량은 이 책에서 사람을 시험하고 관찰하는 일을 쉴 수 없다며 식견과 능력, 행동거지 등을 눈 여겨보는 기술을 나열합니다.
제갈량이 말하는 인간 운영술은 ‘적재적소’입니다. 개괄적으로는 사람을 그의 그릇 크기에 따라 달리 써야 함을 기본으로 합니다. 제갈량은 <장원>에서 조직의 대리쯤으로 볼 수 있는 십부지장(병사 10명을 통솔하는 사람)도 내부의 간사한 자를 알아보고 재앙과 환난을 예측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백부지장은 근면성실을 기본으로 일처리 능력이 엄밀해야 하고, 천부지장이 되려면 정직하고 능동적이며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줄 알아야 하는 데다 용맹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조직을 망하게 하는 사람의 특징도 나열합니다. 면피에 급급한 자, 골든타임을 놓치는 이, 부하를 돌보지 않고 혹사시키는 상관, 기발한 기술로 사익(私益)을 챙기고 부하의 춥고 배고픈 사정을 돌보지 않는 사람 등입니다. 조직 생활을 하면서 쉽사리 만날 수 있지만, 뭐라 설명하기도 애매한 유형들을 똑 떨어지는 말로 표현하고 있어 통쾌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제갈량이 말하는 리더의 덕목
타인을 알아보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자격 있는 리더’가 되는 일은 더 중요합니다. <장원>은 장수가 스스로 경계해야 할 항목으로 ‘탐욕’ ‘실력 있는 사람에 대한 질투심’ ‘남을 욕하는 말을 쉽게 믿고 아첨을 즐기는 일’ ‘남의 단점은 금세 알아보면서 자신의 단점은 모르는 것’ ‘결정 장애’ ‘주색을 밝히는 황음(荒淫)’ ‘거짓과 궤사를 일삼는 가벼운 입’ ‘말이 추잡하고 예의를 벗어나는 무례’ 등을 듭니다.
우리는 흔히 뛰어난 장수를 용감무쌍하고 사나운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갈량은 용감무쌍하나 난폭하고 완강한 모습을 보이거나,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자는 뛰어난 장수가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뛰어난 장수는 윗사람의 총애를 기뻐하지 않고, 굴욕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여성에게 음탕하게 굴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스스로 망하게 되거나 조직에 쓸모없는 장수는 자기 자랑만 늘어놓고, 교만하고 예의 없는 사람입니다.
인색한 자 역시 비록 그 재주가 빼어나도 자격 있는 리더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특히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예의의 쓸모’입니다. “군자를 모멸하면 마음을 다하는 자가 없게 되고, 소인을 모멸하면 힘을 다하는 자가 없게 된다”는 <서경(書經, 동양 정치사상의 본줄기로 불리는 중국 고전)>의 말을 빌려 모멸의 언사가 얼마나 자신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일인지 설명합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장원>은 “이렇게 하면 당신도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현대의 자기계발서와는 그 결이 다릅니다. 사람은 모두 타고나는 성품이 다르고, 그릇의 크기도 다릅니다. 그릇과 성품이 되는 사람, 리더의 자리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그가 구체적인 임무와 자리를 감당해낼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 <장원>이 추구하는 리더십입니다.
중국의 작가 샤리쥔(夏立君)은 책 <시간의 압력>에서 초(楚)나라 곳간지기에서 진(秦)나라 재상에 오른 이사를 비판하며 ‘한때 왕성했던 정신을 거세하고 인성의 빛을 잃은 인물’로 묘사했습니다. 진시황의 유조(임금의 유언)을 조작해 황제를 바꾸는 조고의 역사적 사기극에 동참했으나, 결국 허리가 잘리는 형을 받아 죽는 그는 그저 정체성을 잃고 헤맸던 ‘출세 지상주의자’였습니다.
<장원> 또한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처세가 아닌 ‘인성’을 강조합니다. 처세는 어떤 위치에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그 자리를 쟁취해내는 기술이 아닙니다. 처세란 세속적 성공이 아니라 각자가 있어야 할 위치를 알고, 그곳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는 기술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과 인물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각각에 맞춰 능란하게 대응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보호하고, 운이 닿으면 성공하는 것이 처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감당할 수 있는 임무와 자리는 무엇인지 잘 아는 것만큼 평안하고 행복한 삶이 없습니다. <손자병법(孫子兵法, 동서고금 최고의 군사 고전)>에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음)’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제갈량이 한 말은 아니나 <장원>을 통해 통찰력을 얻은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성어(成語)가 아닐까 합니다.

※ 본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양선희 중앙콘텐트랩 실장(소설가,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