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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칼럼] 메타버스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2022.04.20 3min 50sec

“메타버스 세상이 오고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2020년 개최됐던 자사 개발자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예언대로 ‘메타버스 세상’이 도래한 것처럼 보입니다. 많은 전문가가 지난해 가장 뜨거웠던 키워드로 ‘메타버스’를 꼽았습니다. 페이스북은 사명을 ‘메타’로 바꿨고, 디즈니는 메타버스 전략을 총괄하는 임원을 새로 임명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대선 후보 시절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란 게임 안에서 아바타를 통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조 바이든 캠프 홈페이지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대선 후보 시절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란 게임 안에서 아바타를 통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캠프 홈페이지 ]


메타버스는 실생활에도 스며들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0년 대선 후보 당시 일본 게임회사 닌텐도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란 게임에서 유세를 펼쳤습니다. 비단 외국의 낯선 사례만이 아닙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시무식을 메타버스에서 열었습니다. 삼성전자는 최근 메타버스를 통해 협력회사 신입사원 입문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사업 전망도 장밋빛입니다. 시장조사 업체 스태티스타는 2024년 세계 메타버스 시장 규모가 2900억 달러(약 338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향후 시장 규모가 8조 달러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회의적인 시선도 만만치 않습니다. 메타버스를 제대로 구현할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관련 기술이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마케팅 용어로 남발되고 있다는 평입니다. 전문가들은 “메타버스가 ‘지속 가능한’ 플랫폼이 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합니다.



가상과 현실세계의 합성어
메타버스는 가상·추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게임이나 가상현실에서 이뤄지는 사용자들의 상호작용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메타버스 안에선 사회·문화적 활동을 하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참여자들은 재화의 소유, 투자, 이에 대한 보상 등을 받습니다. 현실 세계의 확장판인 셈입니다.


소설 스노우크래쉬

[ 소설 스노우크래쉬 ]


새로운 단어는 아닙니다. 메타버스란 단어는 1992년 미국 SF 작가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우 크래쉬』에서 처음 쓰였습니다. 이 소설에는 마피아가 장악한 미국에서 살아가는 ‘히로’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히로는 고단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을 때면 메타버스에 접속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처럼 스스로 디자인한 아바타가 살아가는 ‘또 다른 현실’입니다. 
20년 가까이 된 이 용어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부터였습니다. 게임회사 로블록스가 미국 나스닥시장에 상장며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서류에는 “메타버스 플랫폼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할 것”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시장의 관심도 폭발했습니다. 구글 트렌드 검색에 따르면 로블록스가 상장한 뒤 메타버스를 검색한 횟수는 이전보다 14배 넘게 늘었습니다.



기업들의 잇따른 투자, 미래의 수익?
늘어난 관심은 자본을 끌어당겼습니다. 지난해 6월 뉴욕증시에선 처음으로 메타버스 관련주에 투자하는 ‘라운드힐 볼 메타버스 상장지수펀드(ETF)’가 상장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도 발 빠르게 자사 사업에 메타버스를 접목하고 나섰습니다. 패션브랜드 버버리는 메타버스 게임 ‘블랑코스 블록 파티’에 아바타 샤키B를 선보였습니다. 에픽게임즈는 자사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지난해 4월 래퍼 트래비스 스콧의 콘서트를 개최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디즈니 등도 메타버스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습니다. 페이스북은 사명까지 ‘메타’로 바꿨습니다.


[ 에픽게임즈의 게임 포트나이트 사용자들이 메타버스 콘서트를 즐기고 있다. 아리아나 그란데와 트래비스 스콧 등이 공연했다. ⓒ에픽게임즈 홈페이지 ]

[ 에픽게임즈의 게임 포트나이트 사용자들이 메타버스 콘서트를 즐기고 있습니다. 아리아나 그란데와 트래비스 스콧 등이 공연했습니다. ⓒ에픽게임즈 홈페이지 ]


사업들도 연이어 홈런을 치며 수익성을 증명했습니다. 포트나이트 게임 내에서 열린 스콧의 콘서트는 동시 접속자가 1230만 명에 달했습니다. 매출도 오프라인 콘서트를 가뿐히 앞질렀습니다. 2019년 스콧의 오프라인 콘서트 매출이 170만 달러였는데 메타버스를 이용한 온라인 콘서트 매출은 2000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더타임스는 “에픽게임즈 모장스튜디오 등 게임회사의 스킨(아바타 외형 등을 바꿔주는 아이템) 매출이 지난 5년간 10배 이상 증가했다”고 전했습니다. 버버리 샤키B의 가치는 출시 가격 대비 3배 이상으로 뛰었습니다. 레이첼 왈러 버버리 이노베이션 채널 부사장은 “메타버스는 미래의 수익”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마케팅 용어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메타버스 붐을 비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더타임스는 “대부분의 사람이 메타버스보다는 현실을 더 원한다”며 “가상세계의 가능성을 너무 크게 평가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미 실패한 사례도 나왔습니다. 2003년 선보인 VR 플랫폼 세컨드라이프가 대표적입니다. 창업자인 필립 로즈데일 역시 스티븐슨 소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오늘날의 메타버스처럼 세컨드라이프는 VR로 구현한 세상을 이용자들에게 제공했습니다. 세컨드라이프 플랫폼 안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돈을 벌 수 있고 통용되는 화폐도 있었습니다. 아디다스를 비롯한 다양한 브랜드가 세컨드라이프에서 착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컨드라이프의 성과는 예상에 못 미쳤습니다. 2010년 직원의 30%를 해고하고 영국과 싱가포르 사무소를 폐쇄했습니다. 로즈데일은 메타버스 기술에 대해 “실리콘밸리가 갖고 있는 전형적인 환상”이라며 “기술에 의지하는 삶을 원하는 소수를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메타버스를 구현할 기술도 아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입니다. 메타버스 세계의 현실감을 증폭시킬 VR·AR 장비를 소유하고 있는 가정이 적습니다. 션 모나한 가디언 칼럼니스트는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나온 지 30년이 지났지만 VR과 AR 기기 등이 아직 충분히 보급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현재 통용되는 메타버스의 개념이 너무 기초적이고 포괄적이어서 마케팅 용어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단순히 디지털 아바타를 이용해 온라인 세계에서 활동하는 것을 두고 과연 메타버스라고 지칭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용자가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세계인 메타버스의 본래 가치를 살리려면 많은 사람이 꾸준히 소통하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현해야 하는데 단발성으로 그치는 경우가 잦습니다.
메타버스가 제대로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선 지속 가능한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수많은 사람이 같은 화폐를 쓰면서 그 화폐가 가치를 갖게 되는 것처럼 이용자들이 플랫폼을 지속 가능하다고 평가해야 메타버스를 ‘또 다른 현실’로 여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어떤 회사도 메타버스를 스스로 구축하지 못할 것”이라며 “수백만 명의 사람이 참여하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메타버스 그래픽 이미지



메타버스, 건설현장에도 활용?
하지만 쉽게 ‘허상’으로 치부하긴 이릅니다. 현재 메타버스는 ‘세컨드라이프’와 콘텐츠의 양과 질적인 측면에서 다릅니다. 중장기적 지속성이 강화됐습니다. 대체 불가능 토큰(NFT)과 플랫폼이 자체적으로 발행한 암호화폐 등을 통해 소유권을 확보하고 수익도 낼 수 있게 됐습니다. 이용자들에게 참여 동기가 늘어난 셈입니다.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활발히 진행되는 부동산 거래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메타메트릭솔루션스에 따르면 부동산 거래가 이루어지는 세계 4대 메타버스 플랫폼(샌드박스, 디센트럴랜드, 크립토복셀, 솜니움)에서 지난해 거래된 가상 부동산 규모는 약 5억 달러에 달합니다. 올해 1월에만 8500만 달러어치가 거래됐습니다. 이 중 디센트럴랜드에 삼성전자 미국법인이 가상 매장을 개설하면서 디센트럴랜드에서 쓰이는 가상 자산인 ‘마나(MANA)’라는 암호화폐의 가격은 반나절 만에 40% 가까이 치솟았습니다.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세컨드라이프’ 당시보다 기술도 발전해 기업들이 메타버스를 직접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현실세계 공장의 복제판을 메타버스에 구축하는 ‘디지털 트윈’ 전략이 대표적입니다. 현대차는 올해 3D 콘텐츠 개발·운영 회사인 유니티와 파트너십을 체결해 메타버스 기반의 디지털 가상공장을 구축하기로 했습니다. 실제 공장과 동일한 ‘메타 팩토리’를 가상공간에 설립한다는 계획입니다.
BMW는 독일 레겐스부르크 공장을 본뜬 디지털 공장을 엔비디아가 만든 메타버스 세계인 ‘엔비디아 옴니버스’에 만들었습니다. 실제 공장을 시범 가동하지 않고도 최적화된 공장 가동률을 산정할 수 있고,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도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타임지는 “이 기술을 통해 공장 운영을 계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최소 25%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건설현장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올랜도이코노믹파트너십은 미국 플로리다주의 ‘디지털 트윈’를 건설하기 위해 유니티와 제휴를 맺었습니다. 교통 전문가는 이를 통해 철도 시스템이 들어오면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연구할 수 있고, 통신 기업은 5G 네트워크를 어떻게 매핑하면 좋을지 계획할 수 있습니다. 팀 줄리아나 올랜도이코노믹파트너십 CEO는 “이번 프로젝트에 100만~200만 달러가 투입될 것”이라며 “우리는 궁극적으로 ‘척추 인프라’로 발전되길 원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글=박주연 <한국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