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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자를 위한 친절한 클래식 가이드

2020.11.19 3min 18sec

클래식 입문 클래식 음악에 익숙하지 않아도 음악을 들었을 때 마음이 편해지거나,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드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을 견뎌낸 ‘고전’이기 때문인데요. 베토벤, 모차르트 이름만 알아도 음악을 즐기는 데는 문제없죠.


입문자를 위한 친절한 클래식 가이드


시간을 견뎌낸 음악의 매력

오랜 시간을 견디고도 늙지 않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클래식입니다. 음악의 한 장르인 클래식은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고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시간과 유행은 빠르게 흐르지만, 클래식의 자리는 독보적이고 독특한 구석이 있는데요. 순식간에 마음을 달아오르게 하지는 않지만 클래식은 사람을 서서히 물들이고 오래 머무는 감흥을 남깁니다. 클래식을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거나, 음악을 잘 알지 못해도 마음이 끌리는 이유가 시간을 이겨낸 작품을 지식이 아닌 마음으로 먼저 느꼈기 때문입니다. 

‘클래식을 안다’라는 건, 단순히 연주자와 곡명을 외우고 악기 소리를 감별해 내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보다 ‘이 음악이 나는 이래서 좋다’고 표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곡을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클래식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감정을 알아주고 깊은 바다나 캄캄한 우주처럼 눈으로 본 적 없는 풍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클래식은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해 듣는 음악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해 듣는 사귀기 좋은 친구입니다.   


입문자를 위한 친절한 클래식 가이드


클래식, 설레는 첫 시작

우선 익숙한 곡에서부터 시작하자. 한 소절 정도 들었을 때 ‘아, 이 노래!’ 싶은 곡을 끝까지 귀 기울여 보길 권합니다. ‘다다다단-’으로 시작하는 베토벤 5번 교향곡이나 비발디의 사계는 첫 소절을 들으면 누구나 아는 곡 같겠지만, 사실 이 곡을 끝까지 귀 기울여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클래식을 듣기 위해 무언가 배우거나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잠시 내려놓아봅시다. 클래식 초심자에게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사랑받은 곡을 편안하게 들으며 음악이 주는 즐거움을 발견하는 데 있습니다. 

어떤 곡부터 들을지 고민이라면, 클래식 애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나 지난 10년간 클래식 음반 판매량을 살펴볼께요. 순서는 다를 수 있지만 언급되는 작곡가나 앨범은 비슷한데요. 베토벤 교향곡 5번과 9번,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비발디의 사계, 드보르작 교향곡 9번,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이 늘 우선순위에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쇼팽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한 후 급격히 판매량이 증가한 쇼팽 앨범도 더해야 합니다. 200여 년 넘게 세계적인 유명세를 자랑하는 이 곡들은 귀를 사로잡는 선명한 멜로디 라인으로 클래식 입문자라도 음악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다음의 추천 연주를 먼저 들어보고, 관심이 생긴다면 같은 곡을 다른 연주자의 버전으로 들어봅시다.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마다 개성 있는 연주를 녹음했습니다. 그중 나에게 좋은 ‘진짜 명반’을 직접 찾으면 됩니다


어둠에서 광명으로, 2020년에 울려 퍼지는 베토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는 올해, 여기저기서 베토벤 곡이 많이 연주됐습니다. 그의 탄생을 기념한 의미도 있지만, 코로나19로 전 세계적인 어려움을 겪는 때에 베토벤 음악이 가진 상징적인 의미도 더해진 것일 텐데요. 청력 상실뿐 아니라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렸던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이 남긴 기록이나 편지를 보면 음악과 삶에 대한 그의 열정 또한 비극 못지않게 단단했습니다. “나는 운명의 목을 꽉 움켜쥐겠어. 녀석은 절대 굽히지 않고 나를 완전히 짓밟고 말 테니까.” 베토벤은 자신의 운명과 팽팽하게 겨루며 곡을 썼습니다.

‘다다다단-’이라는 강렬한 도입부로 시작되는 ‘교향곡 5번’은 ‘운명교향곡’으로도 불립니다. 일본에서 붙여진 별칭이 한국에 넘어온 것일 뿐, 실제 베토벤이 곡에 붙인 제목은 아닙니다. ‘운명’이니 ‘월광’이니 하는 베토벤 곡의 별칭 대부분은 음악의 이해를 돕기 위해 평론가가 지었거나 출판 과정에서 붙여진 것입니다. 그러니 베토벤 음악 속에서 ‘운명’이나 ‘월광’의 의미를 고민할 필요는 없답니다. ‘교향곡 5번’은 ‘어둠에서 광명으로’라는 하나의 서사를 음악으로 풀어낸 곡인데요. 이 서사를 염두에 두고 음악을 들어볼까요? 쩌렁쩌렁한 소리로 비극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곡은 4막에 이르러서는 활기차게 광명을 선언합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코로나19 이후 첫 대면 공연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로 ‘교향곡 5번’을 연주했고, 베토벤을 주제로 열린 2020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도 이 곡이 마지막 무대에 울려 퍼졌습니다. 고난과 극복 서사가 응축된 이 교향곡은 250년이 지난 현재까지 많은 사람을 위로하며 격려하고 있습니다.

베토벤이 무려 32년간 매달려 완성한 ‘교향곡 9번’도 그의 삶과 인생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걸작입니다. 높고 낮은 음이 폭발하지 않고 끊임없이 긴장을 일으키는 1악장은 거대한 우주의 풍경을 상상하게 할 만큼 매혹적입니다. 4악장에서는 유명한 합창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집니다. 이 곡은 베를린장벽 붕괴를 기념한 성탄절 이브에 공연돼 평화의 상징이 됐습니다. 그 후 ‘인류 사상 걸작’이라는 격찬과 함께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교향곡 9번’이라는 곡명이 낯설다면, 이 곡에 가사를 붙인 찬송가 ‘기뻐하며 경배하세’를 떠올려도 좋죠. ‘교향곡 9번’은 겨울마다 송년 연주회나 예배에서 빠지지 않고 연주되는 단골 레퍼토리입니다.

웅장한 교향곡이 부담스럽다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권합니다. 베토벤은 생전에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했는데, 이 중 유명한 소나타 곡 ‘8번(비창)’ ‘14번(월광)’ ‘23번(열정)’을 먼저 들어보세요. ‘8번(비창)’은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에서 지혜(손예진 역)가 연주했고, 그레타 거윅의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 프리드리히(루이 가렐 역)가 연주했습니다. 피아노 한음 한음이 은은한 파동을 일으키는 이 곡은 영화 속에서 그리움을 이야기할 때 배경음악으로 자주 쓰였습니다. 피아노 한 대로 서늘한 밤 풍경부터 해 지는 붉은 하늘까지 그려내는 베토벤의 소나타 곡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쓰다듬습니다. 혼자 시간을 보낼 때 들으면 더없이 좋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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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치의 역량이 담긴 모차르트의 음악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대자연의 풍경 속에 울려 퍼지는 클라리넷 소리로 시작합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OST로 더 유명한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가 천재의 대명사로 불리는 모차르트의 곡입니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병마와 싸우며 완성한 이 협주곡에는 그가 겪은 고난과 어려운 환경 따위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여유롭고 아름다운 선율이 담겨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악기든, 사람이든 그 능력을 음악에 다 쏟아내게끔 작곡했습니다. 클라리넷 협주곡을 들으면 클라리넷이 직접 노래라도 부르는 것처럼 빼어난 기교를 한껏 선보입니다. 성악가의 노래가 더해진 ‘레퀴엠’이나 ‘피가로의 결혼’ 같은 오페라 역시 고음역의 연속이죠. 이렇게 모차르트의 음악은 악기나 목소리가 가진 고유한 개성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곡이 많습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는 모차르트와 그의 음악에 관한 다양한 에피소드가 극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3대 오페라 중 한 작품 ‘피가로의 결혼’이 등장하는데, 당대에는 너무 상스럽고 불온한 곡으로 여겨져 왕궁에서 질책당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이탈리아어 가사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실 가사 내용을 보면 사랑이나 질투를 노래하는 통속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피가로의 결혼’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리아로 손꼽히는 ‘산들바람 부드럽게’는 영화 <쇼생크탈출>의 마지막 장면에도 등장하는데요. 전곡을 감상하기 부담스럽다면 ‘피가로의 결혼’ 서곡(Overture)은 꼭 들어봅시다. 서곡은 오페라의 다양한 음악을 한 곡에 엮어 맨 처음 선보이는 곡입니다. 활기찬 코미디극에 걸맞게 흥겹고 경쾌한 ‘피가로의 결혼’은 서곡만 들어도 오페라 특유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글=김수영 『클래식』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