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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⑦] 유전자 분석, 생명연장의 꿈 이룰 만능해법이 될 수 있을까?

2023.08.01 4min 28sec

‘문명을 만드는 기술’로 불려온 건설은 사회의 존속과 발전 가능성을 가늠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현대건설이 보유한 핵심 역량과 기술은 어떠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까요? 현대건설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의 시선을 통해 이를 진단해보는 칼럼을 기획 연재합다.



유전자 분석


지난 5월 국내 대표 건설사인 현대건설이 세계적인 과학기기 업체인 미국 ‘써모 피셔 사이언티픽(Thermo Fisher Scientific)’, 국내 대표적인 유전자 분석·검사 서비스 기업 ‘마크로젠’과 3자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습니다. 건설과 실험기기, 유전자 분석이라는 이질적인 업종의 대표 주자들이 만난 것은 아파트 입주민에게 유전자 검사를 통한 맞춤형 건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건설은 언론보도를 통해 식단·운동·수면 관리부터 병원과 연계한 응급 의료 서비스까지 차별화된 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마크로젠’과 유전자 분석 기반의 미래 건강주택 개발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

[ 지난 5월 현대건설은 미국 ‘써모 피셔 사이언티픽’, 국내 대표적인 유전자 분석·검사 서비스 기업 ‘마크로젠’과 유전자 분석 기반의 미래 건강주택 개발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


개인의 유전 정보를 비즈니스에 활용하겠다고 나선 것은 현대건설만이 아닙니다. 제약사와 병원들은 일찍부터 질병 관련 유전자로 맞춤형 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시도에 나섰습니다. 현재는 건설이나 화장품, 백화점처럼 질병과 상관없는 업종들까지 유전자 정보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질병뿐 아니라 미용과 운동, 식성 등 개인의 생활과 관련된 모든 면에서 유전적 정보가 유용해졌기 때문입니다. 유전자 분석업체들은 ‘유전 정보의 민주화’가 의료비를 절감하는 동시에 유전자에 기반을 둔 새로운 커뮤니티 서비스까지 촉발하게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건설에서 유통, 화장품까지 유전자 바람


현대건설이 유전자 분석 서비스로 기대하는 것은 입주민의 ‘올 라이프케어 하우스(All Life-care House)’입니다. 힐스테이트나 디에이치가 단순한 ‘생활공간’을 넘어 ‘삶의 가치를 높이는 곳’으로 진화해온 만큼 이번에는 건강관련 케어 서비스까지 함께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유전자 검사는 마크로젠이 맡고, 써모 피셔는 검사 장비를 제공할 것으로 보입니다.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은 “가족의 유전 정보를 해독하면 질병이나 외모, 식성이 어떻게 유전됐는지 더 잘 알 수 있다”며 “가족사를 유전자로 해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가족이 함께 사는 주거공간이야말로 유전자 검사를 하기에 최적인 집단인 셈입니다. 


올 라이프케어 하우스

[ 현대건설이 유전자 분석으로 기대하는 것은 ‘올 라이프케어 하우스(All Life-care House)’입니다. 힐스테이트나 디에이치가 단순한 ‘생활공간’을 넘어 ‘삶의 가치를 높이는 곳’으로 진화시켜온 만큼 건강관련 케어 서비스까지 함께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


윤영준 현대건설 사장도 “물리적인 변화를 거듭해온 주거공간이 앞으로는 소프트웨어 중심 대전환을 통해 입주민들의 건강한 삶을 전방위로 케어하는 능동적인 주체로 거듭날 것”이라며 “이번 협약이 그 첫걸음이 될 것”라고 협약 소감을 밝힌 바 있습니다.


건강을 앞세운 서비스 개발은 이미 다른 건설사에서도 고민 중입니다. 모바일 앱으로 입주민의 수면 패턴을 관리하고, 혈당‧혈압 정보로 맞춤형 건강 콘텐츠를 제공하거나 국내 디지털 업체들과 업무협약을 맺고 아파트 단지에 스마트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설사 서비스가 스마트홈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한정되고 있는 반면, 현대건설은 여기에 유전 정보를 결합해 생명공학 분야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다른 업종에서도 유전 정보를 활용하는 움직임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롯데그룹의 롯데헬스케어는 유전자 검사업체인 테라젠헬스케어와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모발 두피 케어, 정신건강 상담 전문업체 등과 잇따라 업무협약을 맺고 있습니다. 앞으로 롯데그룹이 보유한 호텔, 유통, 병원과 연계하면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습니다. 화장품업체인 아모레퍼시픽은 유전체 분석기관 랩지노믹스와 유전자 검사 서비스 공급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를 통해 고객들은 DNA 분석 키트를 활용해 제안된 맞춤형 피부 솔루션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20년 동안 유전자 검사비 급락이 시장 키워


  유전자는 DNA로 구성된 유전정보단위로, 세포의 생명을 유지하고 특정 기능 수행에 필요한 단백질 등을 생산합니다. 이중나선구조 형태의 가닥은 아데닌(Adenine), 티민(Thymine), 사이토신(Cytosine), 구아닌(Guanine) 4개의 염기로 구성되어 이 배열 순서가 유전정보를 결정합니다.


올해는 인간의 유전 정보를 모두 밝힌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 Human Genome Project)’가 완료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또한,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가 나선형 구조임을 밝힌 지 7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게놈은 DNA의 인간 유전 정보 전체를 일컫는 말입니다. 유전물질인 DNA는 데옥시리보핵산(deoxyribonucleic acid)의 약자로, 아데닌(Adenine)·구아닌(Guanine)·사이토신(Cytosine)·티민(Thymine) 등 네 가지 염기(鹽基, DNA나 RNA의 구성 성분인 질소를 함유하는, 고리 모양의 유기 화합물)로 구성됩니다. 생명의 설계도라고 하는 유전자는 염기들이 배열된 순서에 따라 모든 생명현상을 관장하는 단백질을 만드는데, 게놈 해독은 DNA에서 염기들이 배열된 순서를 밝히는 것을 지칭합니다. 


전문가들은 최근 유전자 검사 시장이 확대되는 것은 게놈 해독 비용이 획기적으로 떨어진 덕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게놈 프로젝트 초창기에는 한 사람의 게놈 지도를 완성하는데 30억 달러(3조 9000억원)가 들었습니다. 지금은 1인당 20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죠. 덕분에 과거 과학자들만 다루던 유전 정보는 이제 일반인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의료정보가 됐습니다. 면봉으로 입안을 긁어 검사업체에 보내면 조상이 누구인지부터 체형, 외모, 질병 관련 유전자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소비자가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검사기관에 직접 의뢰하는 DTC(Direct to Customer)가 유전분석에서도 가능해졌습니다.

 

유전자 분석

[ 최근 유전자 검사 시장이 확대되는 것은 게놈 해독 비용이 획기적으로 떨어진 덕분입니다. 과학자들만 다루던 유전 정보가 일반인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소비자가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검사기관에 직접 의뢰하는 DTC(Direct to Customer)가 유전분석에서도 가능해졌습니다 ]


DTC 시장은 세계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코트라는 글로벌 유전자 검사 시장이 2019년 64억 2400만 달러(8조 3600억원)에서 2024년 117억 9080만 달러(15조 3000억원)로 5년간 두 배 가까이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미국에만 23앤드미, 엔세스토리 등 90여 업체가 성업 중이고, 국내에서도 마크로젠, 테라젠바이오, 엔젠바이오, 랩지노믹스, 제노플랜코리아, 클리노믹스 등 여섯 업체가 작년 말 정부로부터 DTC 유전자검사기관으로 공식 인증을 받았습니다. 사업영역도 다양합니다. 질병 정보 제공에서 시작해 조상 찾기로 서비스를 확대했고, 최근에는 개인의 유전정보를 모아 신약개발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유전자 검사의 표준이 될 게놈 지도도 더 정교해졌습니다. 2001년 전 처음 나온 인간 게놈 지도는 백인 한 명의 유전자만 해독한 것이었습니다. 지난 5월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인간 범유전체 참조 컨소시엄(HPRC)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47개 인종의 유전체를 바탕으로 만든 인간 범유전체 지도의 초안을 공개했습니다. 새로운 게놈 지도는 인종에 따른 질병의 특성을 파악해 맞춤형 의료를 구현하는 데 새로운 길잡이가 될 전망입니다. 



멸종 인류에서 장내 세균 유전자 분석까지, 질병 정복 기대감 높아져


진화


유전자 검사의 정확도와 예측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인종을 넘어 멸종한 고대 인류와 영장류, 세균 유전자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는 전체 영장류의 86%에 해당하는 233종(種)의 영장류 703마리의 유전체를 분석한 논문 10편이 실렸습니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가장 가까운 영장류의 유전자를 알면 질병 유전자의 변화도 추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방식의 접근은 영장류뿐 아니라 멸종한 고대 인류로도 확장됐습니다.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스반테 페보 교수는 오늘날 아시아인과 유럽인은 누구나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1~2%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 지난해 노벨 의학상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인류에게 남은 고대 인류의 유전자를 규명하면 질병 극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입니다. 실제로 페보 교수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코로나와 싸우는 유전자가 네안데르탈인에서 왔음을 밝혀 주목을 받았습니다. 페보 교수는 지난 2021년 국제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네안데르탈인에서 물려받은 유전자 3개가 코로나 중증 위험을 22% 낮춘다”고 밝혔습니다.

*네안데르탈인Neanderthal man: 독일 뒤셀도르프 지역의 네안데르 계곡에서 발견된 화석인류. 약 42,000년 전에 멸종한 것으로 추정되며 유럽을 중심으로 서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까지 분포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전자 분석


인류에 이어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사람 몸에 공생하는 세균인 마이크로바이옴의 유전자입니다. 인간의 피부와 소화기관, 비뇨기에는 다양한 세균이 사는데, 그 수는 인간 세포와 비슷하거나 많습니다. 그리고 소화기 질환은 물론, 호흡기, 생식기 심지어 치매나 다발성 경화증 같은 뇌 질환까지 다양한 질병이 마이크로바이옴과 연결돼 있다는 증거가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질병뿐 아닙니다.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사람의 체질도 특정 장내 세균 덕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피부 세균은 미용과 직결되며, 질 내 세균은 여성 건강을 좌우합니다.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은 “유전자 검사는 장차 마이크로바이옴 유전자 검사로까지 발전할 것”이라며 “유전 정보의 민주화로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관리하면 고령화 사회의 의료비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일상의 영역까지 다가온 유전자 분석. 인류의 영원한 꿈인 생명연장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글. 이영완

동아일보와 동아사이언스를 거쳐 조선일보에서 19년간 과학기자로 일하다가 2022년 9월 조선미디어그룹의 인터넷 경제매체인 조선비즈로 자리를 옮겨 과학전문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한국과학기자협회 27∼28대 회장을 지냈으며, 과학기술부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한국과학기자협회 올해의 GSK 의과학 기자상,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창의보도상, 한국공학한림원 해동상 등을 받았습니다. 서울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을 수료했으며, 미 하버드대 의대에서 방문연구원으로 3D 프린터와 줄기세포를 결합시킨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현대건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인포그래픽=원혜연